교회가 바라보는 방향
[섭리 속에 세워진 100년, 사명으로 이어갈 100년]
도화교회는 신호리 호덕교회에 시련이 닥쳐 성도들이 흩어질 때, 유경오 성도(장로)가 자신의 집을 열어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지켜냄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는 건물 이전에 예배 공동체임을 보여준 믿음의 결단이 곧 도화교회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이어 임남수 집사가 1929년 당오리 516-1번지(현 만나홀)의 15평 초가집을 헌물 함으로 첫 예배당이 세워졌고, 증축을 거쳐 1957년 현재의 514-1번지에 62평 규모의 석조 예배당이 건립되었습니다.
특히 6·25 동란 직후, 삶조차 버거운 형편 속에서 “내 집보다 하나님의 집을 먼저 세우겠다”는 고백으로 세운 이 예배당은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이 예배당에는 깊은 신학적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동편과 서편의 각각 여섯 개 창, 그리고 전면과 후면, 출입문 좌우에 난 창을 더한 열두 개의 아치창은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를 상징합니다. 이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24장로의 형상을 통해 옛 언약과 새 언약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되어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의 완성을 드러냅니다. 위로 향한 아치 창틀은 하늘을 사모하는 교회의 지향성과 하나님 나라를 향한 소망을 표현합니다.
또한 사각 탑은 번제단을 상징 하여 뿔을 달아 속죄와 헌신을 상징하고, 그 위의 면류관은 구원받은 성도에게 약속된 영광과 승리를 나타냅니다. 이처럼 1957년에 건축된 예배당의 신앙적 상징을 담은 첨탑은 2026년 2월에 복원되어, 선진들의 믿음의 고백을 오늘에 다시 세우는 의미 있는 결실이 되었습니다. 이 예배당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돌로 새긴 신앙고백이며 건축으로 선포한 교회론입니다.
더욱이 이 자리는 일제강점기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일본 주재소였으며, 6·25 당시에는 북한군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던 핍박의 현장이었습니다. 황제 숭배와 폭력이 지배하던 그 공간이 이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로 바뀌었습니다. 그 자리에 십자가가 세워졌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이름이 불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건축의 결과가 아닙니다. 황제의 자리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셨다는 신앙의 선언이며, 폭력이 머물던 자리를 예배가 차지했다는 복음의 증언입니다. 억압의 공간이 예배의 공간으로 변화된 이 사실은 역사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드러냅니다.
지난 100년이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 속에 지켜진...